뮤즈
“뮤즈”라는 단어를 아는가?
뮤즈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예술의 여신으로, 비유적으로는 해당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존재로 표현되었다. 예시로는 “단테 - 베아트리체” 관계와, “루이스 캐럴 -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 이 있을 수 있겠다.
시작
내가 주변 일들로 정신적으로 매우 몰려있을 때, 행동으로 나를 안심시켜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 친구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가벼운 조언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습관적 우울과 냉소주의에 빠질 때, "놀자"고 하며 나를 즐겁게 해주면서도, 자신이 맡은 일엔 책임감을 갖고 수행해오던 친구였다. 나는 그 밝은 분위기가 정말로 고마웠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힘든 계획을 세워갈 때, 현실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했다. 아마 그 친구로써는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칭 N이었는데, 나보다 훨씬 하고싶은 게 많았을텐데, 그걸 참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ㅋㅋ…). 하지만 이 브레이크가, 나의 약점을 채워주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코딩을 알려주며 문제를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했었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는데, 잘 전달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모로 결과는 좋지 않았고, 시간은 부족했으며, 서로 간에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시너지는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문제
내가 도울 수 없었던 문제들이 있었다. 결국, 노력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내 코딩 실력은 아직 미흡하며 취업 준비의 압박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또한, 감정에 휘둘려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 같은 불안도 있었다. 부모님께서 다시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고, 나 또한 나이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라, 순간의 감정이 내 판단을 흐릴까 두려웠다.
더불어, 내 내면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숨겨야만 하는 관계와 당당하지 못한 태도는 언제든 내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압박감을 주었고, 이 관계 자체가 일시적이고 의미없는 관계로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어둡게 만들었다. 아무리 서로가 당당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이 관계가 지속불가능하게 될 것이란 건 이때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정보였다.
내가 선택한 해답
결국 내가 선택한 해답은, 평소에 쉽게 의존했던 패턴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상대에게 못되게 굴고 상처를 주어 ‘내가 싫다’라는 반응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직접 말로 표현하면 감정이 강화되어, 미련 없이 관계를 단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때로는 한없이 찌질해지는 모습을 보이며, 상대방이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만들고자 했다.
솔직히, 그 과정에서 중학교 때 겪은 PTSD와 과거의 상처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나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상처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친구가 너무 착하다 보니 이런 직접적인 상처 주기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고, 나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며 후회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후회는 없는가?
돌이켜보면 후회는 없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경험 덕분에 도메인 주도 설계(DDD)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상태 머신과 이벤트를 통한 도메인 모델의 상호작용을 능숙하게 구현하는 법을 익혔으며, 만약 그 경험이 없었다면 이번 소프티어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적으로도 큰 성장을 이루었음을 느낀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짊어질 필요 없이, 삶 그 자체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론
아무 일도 크게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 가볍게 도우며 지내온 관계였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나는 그 친구의 주변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항상 최선을 다해왔고, 감정에 휘둘려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힘든 상황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결국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믿는다.
그 친구 역시 이미 똑똑하고, 뭐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필요할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성숙한 사림이기에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그 친구는 내게 돌풍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앞으로도 직접 마주하기는 어렵겠지만, 멀리서 가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는 관계 정도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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